당산옷입히기

한국무속신앙사전
정월에 하는 세시놀이인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한 뒤에 줄을 당산에 감는 것. 당산의 신체는 당신(堂神)의 형태에 따라서, 당산나무, 장승, 돌무더기 등이 있다. 당산은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마을의 수호산에 해당하며, 마을 사람들은 매해 당산에 제의를 드린다. 이 과정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당산에 입힌다.
definition
정월에 하는 세시놀이인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한 뒤에 줄을 당산에 감는 것. 당산의 신체는 당신(堂神)의 형태에 따라서, 당산나무, 장승, 돌무더기 등이 있다. 당산은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마을의 수호산에 해당하며, 마을 사람들은 매해 당산에 제의를 드린다. 이 과정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당산에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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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정의정월에 하는 세시놀이인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한 뒤에 줄을 당산에 감는 것. 당산의 신체는 당신(堂神)의 형태에 따라서, 당산나무, 장승, 돌무더기 등이 있다. 당산은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마을의 수호산에 해당하며, 마을 사람들은 매해 당산에 제의를 드린다. 이 과정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당산에 입힌다.
정의정월에 하는 세시놀이인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를 한 뒤에 줄을 당산에 감는 것. 당산의 신체는 당신(堂神)의 형태에 따라서, 당산나무, 장승, 돌무더기 등이 있다. 당산은 [마을](/topic/마을)을 수호하는마을의 수호산에 해당하며, 마을 사람들은 매해 당산에 제의를 드린다. 이 과정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이 줄을 당산에 입힌다.
기타연구사에서 당산옷입히기는 와의 관련성을 지적한 바 있다. 지렁이·용·뱀 등의 상징은 일련의 성기 상징(phallic symbol)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남성의 성기와 관련된다고 관념한다. 여성 또는 여신으로 상징되는 존재인 신목에 남성의 성기를 감는 당산옷입히는 과정을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하는 것은 일견 흥미로운 지적이라고 할 수있다.

이와 달리 이른바 신옷의 일부를 [가지](/topic/가지)고 여행을 떠나서 부유한 자산을 구축하고 아내를 얻는다고 하는 역시 접근 가능한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는 그 점이 다소 희박하지만 예를 들어 일본에서 전하는 와라시베초자(藁しべ長者)와 같은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이야기는 증여에 관한 기본적 원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하위의 [변이](/topic/변이) [유형](/topic/유형) 가운데 당산에 있는 새끼를 감아서 쥐고 나서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이와 유사한 이야기의 신화적 관련성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끼 서발이 풍요와 생산의 상징인 점은 당산옷과 일련의 연결 가능성을 말해 주는 증거이다.
기타연구사에서 당산옷입히기는 와의 관련성을 지적한 바 있다. 지렁이·용·뱀 등의 상징은 일련의 성기 상징(phallic symbol)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남성의 성기와 관련된다고 관념한다. 여성 또는 여신으로 상징되는 존재인 신목에 남성의 성기를 감는 당산옷입히는 과정을 이러한 각도에서 해석하는 것은 일견 흥미로운 지적이라고 할 수있다.

이와 달리 이른바 신옷의 일부를 [가지](/topic/가지)고 여행을 떠나서 부유한 자산을 구축하고 아내를 얻는다고 하는 역시 접근 가능한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는 그 점이 다소 희박하지만 예를 들어 일본에서 전하는 와라시베초자(藁しべ長者)와 같은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이야기는 증여에 관한 기본적 원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하위의 [변이](/topic/변이) [유형](/topic/유형) 가운데 당산에 있는 새끼를 감아서 쥐고 나서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이와 유사한 이야기의 신화적 관련성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끼 서발이 풍요와 생산의 상징인 점은 당산옷과 일련의 연결 가능성을 말해 주는 증거이다.
내용당산옷입히기는 달리 ‘당산입히기’라고도 한다. 당산에 옷을 입히는 것을 총괄적으로 줄여서 이러한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산 옷입히기나 당산 입히기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당산에 줄로 옷을 입히는 데서 동일한 관념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산옷입히기의 분포는 엄격하게 조사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의례를 행하는 대국면의 지역적 분포는 작성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분포의 윤곽을 제시할 수 있다.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는 근본적으로 제의적 형태로 되어 있으며, [마을](/topic/마을)의 경기이자 놀이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벌이는 것도 특정한 형식적 기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줄다리기는 단순하게 놀이로 진행되지 않고 마을의 [농악](/topic/농악)대와 [고사](/topic/고사)를 지내는 유가적 의례 집단과 결부되면서 신성한 의례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줄다리기는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의례인 점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편 줄다리기의 지역적 유형은 영남형과 호남형으로 갈라서 말할 수 있다. 영남형은 줄이 길고 여러 곁줄이 있으며 대규모의 인원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큰 줄이고, 남녀의성적결합을 형상화하는 주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암줄과 수줄로 둘로 가르고 이들을 고에 [비녀](/topic/비녀)를 끼워 연결하면서 줄다리기를 하는 점이 유사하지만 주술적인성희(性戱)로 간주되는 것이 영남지방의 줄다리기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형은 줄의 모양이 길지 않으며, 줄의 직경 역시 굵지 않다. 호남형의 줄다리기는 당산제의 일환으로 거행되고 남성들에 의해 거행되는 점에서 특별한 면모가 있다. 호남형의 줄다리기와 당산제가 결합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당산옷입히기가 산출되는 점은 당연한 귀결이다. 당산제의 일환으로 놀아지는 것이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당산옷입히기가 산출되는 과정을 말할 수 있다.

호남형의 당산제와 줄다리기가 결합하는 과정을 몇 [가지](/topic/가지)로 정리하면 일련의 순차적 구성이 보인다. 당산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행한다. 이날에 행하는 순서는 줄 만들기, [오방돌리기](/topic/오방돌리기), 줄다리기, 당산입히기, [당산굿](/topic/당산굿) 등 이다. 이 행사는 금기가 많고 엄숙하게 행하는 특징이 있어서 절차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를수록 마을의 축제를 겸하고 있음으로 하여 남녀 구분의 금기가 무너지고 대동놀이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줄만들기는 줄에 쓰일 짚을 추렴하고, 이를 가지고 줄을 만드는 절차이다. 줄만들기에서 발생하는 금기는 여성이 배제되고, 만든 줄의 위를 함부로 넘나들지 않는 특징이 있다. 줄만들기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암줄과 수줄을 구분하여 만드는 것이다. 암줄과 수줄을 구분하고, 이 구분에 의해 줄다리기의 승패와 농사의 흉풍은 서로 깊은 관련을맺게 된다. 암줄이 이겨야 마을의 농사는 풍년이 기원된다.

오방돌리기는 만든 줄을 가지고 마을의 경계 면을 돌아다니는 행위를 말한다. 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의 농악대와 더불어 마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줄의 위세를 과시한다. 이 행위는 마을의 집단적인 성격의 축제임을 명시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의 동참과 기원을 한데 담는 의례적 성격과 절차를 띠는 것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오방돌리기 절차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적을 현시한다.

줄다리기는 남녀가 편을 갈라 하게 된다.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여성 편이 이기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여성 편이 이겨야 마을의 풍요가 도모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기는 것으로 여성쪽을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례라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에서 여성 쪽의 승리는 [유감주술](/topic/유감주술)적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남녀간 줄다리기가 끝나면 당산에 옷을 입히는 절차가 이어진다. 이 절차를 마을 사람들은 의례의 중심에 있다고 관념한다. 줄다리기에 사용한 줄을 당산목에 가지고 가서 줄을 감는 의례를 거행하게 된다. 마을의 신목에 일종의 예단을 바치는 행위와 일치점을 보인다.

당산옷입히기가 마[무리](/topic/무리)되게 되면 다음으로 하는 것이 바로 당산굿이다. 풍물패의 가락에 맞추어 당산굿의 [판굿](/topic/판굿)과 판굿에 의한 세속적 놀이를 곁들이는 것이 당산굿의 절차다.당산굿 가락에 맞추어 흐벅진 놀이를 하고, 이 과정의 뒤를 이어 밤이 새도록 논다.
내용당산옷입히기는 달리 ‘당산입히기’라고도 한다. 당산에 옷을 입히는 것을 총괄적으로 줄여서 이러한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산 옷입히기나 당산 입히기는 서로 다른 말이 아니다. 당산에 줄로 옷을 입히는 데서 동일한 관념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당산옷입히기의 분포는 엄격하게 조사된 바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의례를 행하는 대국면의 지역적 분포는 작성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분포의 윤곽을 제시할 수 있다.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는 근본적으로 제의적 형태로 되어 있으며, [마을](/topic/마을)의 경기이자 놀이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제를 벌이는 것도 특정한 형식적 기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줄다리기는 단순하게 놀이로 진행되지 않고 마을의 [농악](/topic/농악)대와 [고사](/topic/고사)를 지내는 유가적 의례 집단과 결부되면서 신성한 의례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줄다리기는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의례인 점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한편 줄다리기의 지역적 유형은 영남형과 호남형으로 갈라서 말할 수 있다. 영남형은 줄이 길고 여러 곁줄이 있으며 대규모의 인원이 동원되어야 할 정도로 큰 줄이고, 남녀의성적결합을 형상화하는 주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된다. 암줄과 수줄로 둘로 가르고 이들을 고에 [비녀](/topic/비녀)를 끼워 연결하면서 줄다리기를 하는 점이 유사하지만 주술적인성희(性戱)로 간주되는 것이 영남지방의 줄다리기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형은 줄의 모양이 길지 않으며, 줄의 직경 역시 굵지 않다. 호남형의 줄다리기는 당산제의 일환으로 거행되고 남성들에 의해 거행되는 점에서 특별한 면모가 있다. 호남형의 줄다리기와 당산제가 결합되었다고 하는 점에서 앞에서 말한 당산옷입히기가 산출되는 점은 당연한 귀결이다. 당산제의 일환으로 놀아지는 것이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당산옷입히기가 산출되는 과정을 말할 수 있다.

호남형의 당산제와 줄다리기가 결합하는 과정을 몇 [가지](/topic/가지)로 정리하면 일련의 순차적 구성이 보인다. 당산제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행한다. 이날에 행하는 순서는 줄 만들기, [오방돌리기](/topic/오방돌리기), 줄다리기, 당산입히기, [당산굿](/topic/당산굿) 등 이다. 이 행사는 금기가 많고 엄숙하게 행하는 특징이 있어서 절차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를수록 마을의 축제를 겸하고 있음으로 하여 남녀 구분의 금기가 무너지고 대동놀이적 성격을 띠는 것이 일반적이다.

줄만들기는 줄에 쓰일 짚을 추렴하고, 이를 가지고 줄을 만드는 절차이다. 줄만들기에서 발생하는 금기는 여성이 배제되고, 만든 줄의 위를 함부로 넘나들지 않는 특징이 있다. 줄만들기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암줄과 수줄을 구분하여 만드는 것이다. 암줄과 수줄을 구분하고, 이 구분에 의해 줄다리기의 승패와 농사의 흉풍은 서로 깊은 관련을맺게 된다. 암줄이 이겨야 마을의 농사는 풍년이 기원된다.

오방돌리기는 만든 줄을 가지고 마을의 경계 면을 돌아다니는 행위를 말한다. 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의 농악대와 더불어 마을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줄의 위세를 과시한다. 이 행위는 마을의 집단적인 성격의 축제임을 명시하는 한편 마을 사람들의 동참과 기원을 한데 담는 의례적 성격과 절차를 띠는 것임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오방돌리기 절차를 통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적을 현시한다.

줄다리기는 남녀가 편을 갈라 하게 된다.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여성 편이 이기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여성 편이 이겨야 마을의 풍요가 도모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기는 것으로 여성쪽을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례라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에서 여성 쪽의 승리는 [유감주술](/topic/유감주술)적 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남녀간 줄다리기가 끝나면 당산에 옷을 입히는 절차가 이어진다. 이 절차를 마을 사람들은 의례의 중심에 있다고 관념한다. 줄다리기에 사용한 줄을 당산목에 가지고 가서 줄을 감는 의례를 거행하게 된다. 마을의 신목에 일종의 예단을 바치는 행위와 일치점을 보인다.

당산옷입히기가 마[무리](/topic/무리)되게 되면 다음으로 하는 것이 바로 당산굿이다. 풍물패의 가락에 맞추어 당산굿의 [판굿](/topic/판굿)과 판굿에 의한 세속적 놀이를 곁들이는 것이 당산굿의 절차다.당산굿 가락에 맞추어 흐벅진 놀이를 하고, 이 과정의 뒤를 이어 밤이 새도록 논다.
의의당산옷입히기는 세시절기의 의례로 진행되던 것 이지만 호남지방에서는 당산제의 일환으로 긴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이 행사는 역사적 기원이 분명하고, 농경의 주술적 행위로 신에게 신성한 의례를 바치는 절차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동시에 신화적 기원을 지니고 있는 의례로서 후대적인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는 절차라는 점에서도 깊은 의미가 있는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한국의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Christian Deschamps, 재구한국학회 제6차학술회의발표논문집, 1982)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김택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한국신화의 연구 (서대석, 집문당, 2001)
의의당산옷입히기는 세시절기의 의례로 진행되던 것 이지만 호남지방에서는 당산제의 일환으로 긴요한 구실을 하게 된다. 이 행사는 역사적 기원이 분명하고, 농경의 주술적 행위로 신에게 신성한 의례를 바치는 절차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동시에 신화적 기원을 지니고 있는 의례로서 후대적인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는 절차라는 점에서도 깊은 의미가 있는 의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한국의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Christian Deschamps, 재구한국학회 제6차학술회의발표논문집, 1982)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김택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한국신화의 연구 (서대석, 집문당, 2001)
유래당산옷입히기는 당산에 신옷을 바치는 의례로부터 기원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러한 절차는 신목에 여러 [가지](/topic/가지) 옷과 헝겊을 바치는 지역적 사례가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본향당에 신옷을 바치는 절차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의 역사적 기원으로 비단을 짜서 바치던 의 전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을](/topic/마을)의 [도당신](/topic/도당신)을 당줏가리로 삼고 이 당주가리에 새로이 옷을 해 입히는 절차와도 깊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고대의 [국중대회](/topic/국중대회)에서 신목을 모시거나 장식하던 전통은 서로 일정한 관련이 있을 개연성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있는 기록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기록을 보면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동맹](/topic/동맹)이라 일컫는 나라 안의 큰 모임이 있다. 이러한 공적 모임에서는 모두 수를 놓은 비단 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자신을 장식한다. 대가와 주부는 머리에 [두건](/topic/두건)을 쓰는데 두건은 자투리 없이 알맞게 이어져 있다. 소가는 [고깔](/topic/고깔)과 같이 생긴 절풍을 쓴다. 이 나라의 동쪽에는 수혈이라고 불리는큰 동굴이 있다. 시월에 있는 나라 안의 큰 모임에서는 나무를 수혈로 여겨 신으로 좌정시켜서 수혈신으로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을 향해 허리 숙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其公會 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 大加主簿頭著幘 如幘而無餘 其小加著折風 形如弁.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國中大會 迎隧神還于國東上祭之 置木隧於神坐)”고 한다. 문맥에 다소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신맞이와 놀이를 하는 대목은 오늘날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신목에 방울과 북을 다는 전통 역시 이와 연관된다. 예를 들어 “또 모든 나라에는 각각 소도라고 일컫는 별도의 고을을 두고서 큰 나무를 정하여 방울과 북을 걸어 놓고 귀신을 섬긴다(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 縣鈴鼓 事鬼神)”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각도에서 음미할 만하다.

나무로 만든 신체를 섬기던 단계에서 벗어나 농경재배가 일반화되고 여기에 북과 방울을 악기로 사용하면서 다시 신옷을 바치는 단계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당산옷을 입히는 것은 고대의 전례와 함께 후대적 변형을 일으킨 결과가 아닐까 추정된다. 이런 점에서 당산목과 당산옷이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을배제할 수 없다.
유래당산옷입히기는 당산에 신옷을 바치는 의례로부터 기원했을 개연성이 있다. 이러한 절차는 신목에 여러 [가지](/topic/가지) 옷과 헝겊을 바치는 지역적 사례가 있으므로 이를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본향당에 신옷을 바치는 절차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절차의 역사적 기원으로 비단을 짜서 바치던 의 전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마을](/topic/마을)의 [도당신](/topic/도당신)을 당줏가리로 삼고 이 당주가리에 새로이 옷을 해 입히는 절차와도 깊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고대의 [국중대회](/topic/국중대회)에서 신목을 모시거나 장식하던 전통은 서로 일정한 관련이 있을 개연성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있는 기록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 기록을 보면 “시월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동맹](/topic/동맹)이라 일컫는 나라 안의 큰 모임이 있다. 이러한 공적 모임에서는 모두 수를 놓은 비단 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자신을 장식한다. 대가와 주부는 머리에 [두건](/topic/두건)을 쓰는데 두건은 자투리 없이 알맞게 이어져 있다. 소가는 [고깔](/topic/고깔)과 같이 생긴 절풍을 쓴다. 이 나라의 동쪽에는 수혈이라고 불리는큰 동굴이 있다. 시월에 있는 나라 안의 큰 모임에서는 나무를 수혈로 여겨 신으로 좌정시켜서 수혈신으로 맞이하여 나라의 동쪽을 향해 허리 숙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其公會 衣服皆錦繡金銀以自飾. 大加主簿頭著幘 如幘而無餘 其小加著折風 形如弁.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國中大會 迎隧神還于國東上祭之 置木隧於神坐)”고 한다. 문맥에 다소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신맞이와 놀이를 하는 대목은 오늘날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신목에 방울과 북을 다는 전통 역시 이와 연관된다. 예를 들어 “또 모든 나라에는 각각 소도라고 일컫는 별도의 고을을 두고서 큰 나무를 정하여 방울과 북을 걸어 놓고 귀신을 섬긴다(又諸國各有別邑 名之爲蘇塗 立大木 縣鈴鼓 事鬼神)”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각도에서 음미할 만하다.

나무로 만든 신체를 섬기던 단계에서 벗어나 농경재배가 일반화되고 여기에 북과 방울을 악기로 사용하면서 다시 신옷을 바치는 단계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하겠다. 당산옷을 입히는 것은 고대의 전례와 함께 후대적 변형을 일으킨 결과가 아닐까 추정된다. 이런 점에서 당산목과 당산옷이 서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가능성을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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