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장보고](/topic/장보고)와 청해진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당제와 양식 및 어업이 잘되고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갯제](/topic/갯제)를 포함하는 장좌리의 마을의례. |
---|---|
mp3Cnt | 0 |
wkorname | 김준 |
정의 | [장보고](/topic/장보고)와 청해진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당제와 양식 및 어업이 잘되고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갯제](/topic/갯제)를 포함하는 장좌리의 마을의례. | 정의 | [장보고](/topic/장보고)와 청해진 군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당제와 양식 및 어업이 잘되고 [마을](/topic/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갯제](/topic/갯제)를 포함하는 장좌리의 마을의례. | 참조 | 송징[장군](/topic/장군) | 참고문헌 | 완도읍 장좌리 장좌[마을](/topic/마을) 당제 (조경만 외, 완도군의 문화유적, 목[포대](/topic/포대)박물관, 1995) 완도 장좌리 당제의 제의 구조와 세계상 (나경수, 광주․전남의 민속연구, 민속원, 1998) 바닷가 마을굿에 나타난 3수 원리분석 (박흥주,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당제 (송기태, 한국의 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 여행 (김준, 웅진, 2009) | 참조 | 송징[장군](/topic/장군) | 참고문헌 | 완도읍 장좌리 장좌[마을](/topic/마을) 당제 (조경만 외, 완도군의 문화유적, 목[포대](/topic/포대)박물관, 1995) 완도 장좌리 당제의 제의 구조와 세계상 (나경수, 광주․전남의 민속연구, 민속원, 1998) 바닷가 마을굿에 나타난 3수 원리분석 (박흥주, 경희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완도군 완도읍 장좌리당제 (송기태, 한국의 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 여행 (김준, 웅진, 2009) | 내용 | 당제를 준비하기 위해 처음 하는 일은 정월 초사흗날 [마을](/topic/마을) 대동공회(大同公會)를 개최해 [제관](/topic/제관), 제비, 당굿 칠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다. 제관으로 당주 부부와 집사를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려면 친가는 물론 처가까지 부정과 유고(有故)가 없어야 한다. 당주는 제물 일체를 준비하고, 집사는 [독축](/topic/독축)과 집례를 관장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소변․대변을 본 뒤 손발을 씻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제물은 쇠머리, 돼지 한 마리 생선, 과일, 나물 등이다. 구입할 때에는 흥정하지 않고 값을 치른다. 제물을 만들 때 간을 보지 않으며, 고춧가루 등 양념을 하지 않는다. 제물 외에 주민이나 참가자들이 먹을 음식은 부녀회에서 별도로 준비한다.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당집․공동[우물](/topic/우물)․사장거리를 청소하고, [금줄](/topic/금줄)을 치고, [황토](/topic/황토)를 파다가 놓는다. 이러한 준비는 반별로 돌아가며 한다. 당주는 매일 마을의 길이 열리는 썰물 때 장섬에 들어가 당집에 불을 밝히고, 물이 들면 배를 타고 빠져나온다. 당제는 마을회의(대동공회)-금기 및 당제준비-당굿(당제)-사장굿-샘굿-[[마당](/topic/마당)밟이](/topic/마당밟이)-파장굿-[갯제](/topic/갯제)-결산보고 순으로 진행된다. 당제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는 개(갯벌)를 막아 주민들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금한다. 전에는 사나흘 동안 개를 막기도 했다. 당제를 위해 장좌리 사람들은 정월대보름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장섬을 오른다. 매년 당에 오를 시간이면 물길이 열려 굿을 하면서 오를 수 있다. 당주가 제물과 함께 가장 앞서고, 진설을 위해 부녀회원들이 따른다. 이어 [길굿](/topic/길굿)을 치면서 굿꾼들이 당집에 오른다. 당으로 오르는 일행은 남자짐꾼(제물), 여자짐꾼(진설), 당주부부, 이장, 집사, 포수, 우창부, 좌창부, [상쇠](/topic/상쇠), 수징, 부징, 장보고기, [영기](/topic/영기), 부쇠, 삼쇠, 종쇠, 영기, 설장구, 부장구, 설북, 2북, 3북, 4북, …, 13북, 끝북 순이다. 당주가 당집에 들어가 제물을 진설하고, 해가 뜨려는 순간 포수의 신호에 따라 상쇠가 굿을 치면 당집 마당으로 들어가 도열한다. 당집 안에선 신체(神體)를 마주보고 중앙에 이장, 오른쪽에 집사, 왼쪽에 당주부부가 각각 선다. 이장이 술을 올리면 [초헌](/topic/초헌)-독축-[아헌](/topic/아헌)-소지 순으로 제의가 진행된다. 재배할 때마다 굿을 친다. 이어 이장과 포수가 들어가 [한지](/topic/한지)에 음식을 싸서 땅에 묻고 술을 붓는다. 이를 사신(辭神)이라고 한다. 사신을 하는 동안 당주 내외, 집사, 포수, 창부는 [제상](/topic/제상)에서 제물을 내려 [헌식](/topic/헌식) 준비를 한다. 헌식은 여자당주와 집사가 주관한다. 이는 [장군](/topic/장군)님을 따라온 군사들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헌식상의 음식들을 아침식사로 [음복](/topic/음복)한다. 음복을 하고 난 다음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굿과 당집을 도는 날당산굿을 끝으로 내려와 배를 탄다.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올 때에는 해적을 물리치는 ‘전승락’, 청해진으로 환진하는 배굿 ‘선승락’ 등이 재현된다. 마을에서는 마을샘굿, 당굿과 마당밟이로 이어진다. 堂祭 祝文 維歲次 檀紀四千三百三十八年 (乙酉) 正月十五日 長佐里 里民代表 (郭貞男) 敢昭告于 顯張淸海大使保皐之神位 顯宋大將軍徵之神位 威冠一代 靈存永世追慕 茲値上望 謹以淸酌 庶羞恭伸 奠獻 尙饗 당제와 별도로 정월 그믐날에 지낸 갯제는 1980년대 이후 당제와 같은 날짜에 진행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갯제의 신격은 용왕이며, 음식은 당주 집에서 준비한다. 당제와 같은 날짜에 지내지만 음식만은 별도로 준비한다. 보통 오후 6~7시쯤에 장좌리와 장섬 사이 북쪽 물이 빠진 갯벌에서 지낸다. 당주부부가 음식을 준비해 진설하면 군중이 굿을 치면서 갯벌로 이동한다. 이때의 굿은 당에서 치는 제굿과 같다. 당주, 집사, 이장이 제관이 되어 제를 진행한다. 제를 지내고 준비해 둔 짚에 제상의 음식을 조금씩 떼어내 헌식을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상을 바닷가에 내놓고 그것을 [거리밥](/topic/거리밥)으로 하여 마을 안과 집 안의 잡귀를 [퇴송](/topic/퇴송)했다. 갯제 [축문](/topic/축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을유년을 맞이하여 장좌리의 무궁한 발전과 마을 주민들이 무병장수하여 행운 함께하시며, 바다에는 다시마, 감태, 미역, 낙지 풍어를 이루고, 조업 시에는 만선으로 돌아오도록 용왕님 전에 비나이다.” | 내용 | 당제를 준비하기 위해 처음 하는 일은 정월 초사흗날 [마을](/topic/마을) 대동공회(大同公會)를 개최해 [제관](/topic/제관), 제비, 당굿 칠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다. 제관으로 당주 부부와 집사를 선정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려면 친가는 물론 처가까지 부정과 유고(有故)가 없어야 한다. 당주는 제물 일체를 준비하고, 집사는 [독축](/topic/독축)과 집례를 관장한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소변․대변을 본 뒤 손발을 씻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제물은 쇠머리, 돼지 한 마리 생선, 과일, 나물 등이다. 구입할 때에는 흥정하지 않고 값을 치른다. 제물을 만들 때 간을 보지 않으며, 고춧가루 등 양념을 하지 않는다. 제물 외에 주민이나 참가자들이 먹을 음식은 부녀회에서 별도로 준비한다.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당집․공동[우물](/topic/우물)․사장거리를 청소하고, [금줄](/topic/금줄)을 치고, [황토](/topic/황토)를 파다가 놓는다. 이러한 준비는 반별로 돌아가며 한다. 당주는 매일 마을의 길이 열리는 썰물 때 장섬에 들어가 당집에 불을 밝히고, 물이 들면 배를 타고 빠져나온다. 당제는 마을회의(대동공회)-금기 및 당제준비-당굿(당제)-사장굿-샘굿-[[마당](/topic/마당)밟이](/topic/마당밟이)-파장굿-[갯제](/topic/갯제)-결산보고 순으로 진행된다. 당제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는 개(갯벌)를 막아 주민들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금한다. 전에는 사나흘 동안 개를 막기도 했다. 당제를 위해 장좌리 사람들은 정월대보름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장섬을 오른다. 매년 당에 오를 시간이면 물길이 열려 굿을 하면서 오를 수 있다. 당주가 제물과 함께 가장 앞서고, 진설을 위해 부녀회원들이 따른다. 이어 [길굿](/topic/길굿)을 치면서 굿꾼들이 당집에 오른다. 당으로 오르는 일행은 남자짐꾼(제물), 여자짐꾼(진설), 당주부부, 이장, 집사, 포수, 우창부, 좌창부, [상쇠](/topic/상쇠), 수징, 부징, 장보고기, [영기](/topic/영기), 부쇠, 삼쇠, 종쇠, 영기, 설장구, 부장구, 설북, 2북, 3북, 4북, …, 13북, 끝북 순이다. 당주가 당집에 들어가 제물을 진설하고, 해가 뜨려는 순간 포수의 신호에 따라 상쇠가 굿을 치면 당집 마당으로 들어가 도열한다. 당집 안에선 신체(神體)를 마주보고 중앙에 이장, 오른쪽에 집사, 왼쪽에 당주부부가 각각 선다. 이장이 술을 올리면 [초헌](/topic/초헌)-독축-[아헌](/topic/아헌)-소지 순으로 제의가 진행된다. 재배할 때마다 굿을 친다. 이어 이장과 포수가 들어가 [한지](/topic/한지)에 음식을 싸서 땅에 묻고 술을 붓는다. 이를 사신(辭神)이라고 한다. 사신을 하는 동안 당주 내외, 집사, 포수, 창부는 [제상](/topic/제상)에서 제물을 내려 [헌식](/topic/헌식) 준비를 한다. 헌식은 여자당주와 집사가 주관한다. 이는 [장군](/topic/장군)님을 따라온 군사들을 대접하기 위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이 헌식상의 음식들을 아침식사로 [음복](/topic/음복)한다. 음복을 하고 난 다음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굿과 당집을 도는 날당산굿을 끝으로 내려와 배를 탄다.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올 때에는 해적을 물리치는 ‘전승락’, 청해진으로 환진하는 배굿 ‘선승락’ 등이 재현된다. 마을에서는 마을샘굿, 당굿과 마당밟이로 이어진다. 堂祭 祝文 維歲次 檀紀四千三百三十八年 (乙酉) 正月十五日 長佐里 里民代表 (郭貞男) 敢昭告于 顯張淸海大使保皐之神位 顯宋大將軍徵之神位 威冠一代 靈存永世追慕 茲値上望 謹以淸酌 庶羞恭伸 奠獻 尙饗 당제와 별도로 정월 그믐날에 지낸 갯제는 1980년대 이후 당제와 같은 날짜에 진행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갯제의 신격은 용왕이며, 음식은 당주 집에서 준비한다. 당제와 같은 날짜에 지내지만 음식만은 별도로 준비한다. 보통 오후 6~7시쯤에 장좌리와 장섬 사이 북쪽 물이 빠진 갯벌에서 지낸다. 당주부부가 음식을 준비해 진설하면 군중이 굿을 치면서 갯벌로 이동한다. 이때의 굿은 당에서 치는 제굿과 같다. 당주, 집사, 이장이 제관이 되어 제를 진행한다. 제를 지내고 준비해 둔 짚에 제상의 음식을 조금씩 떼어내 헌식을 한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상을 바닷가에 내놓고 그것을 [거리밥](/topic/거리밥)으로 하여 마을 안과 집 안의 잡귀를 [퇴송](/topic/퇴송)했다. 갯제 [축문](/topic/축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 용왕님께 비나이다. 을유년을 맞이하여 장좌리의 무궁한 발전과 마을 주민들이 무병장수하여 행운 함께하시며, 바다에는 다시마, 감태, 미역, 낙지 풍어를 이루고, 조업 시에는 만선으로 돌아오도록 용왕님 전에 비나이다.” | 역사 | 장좌리는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에 속한 [마을](/topic/마을)로, 읍소재지에서 북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농반어의 마을이다. 장좌리의 본래 이름은 장재리(張在里)였다고 한다. 장씨 성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장보고](/topic/장보고) 일가와 관련성을 빌미로 일제강점기 장보고의 흔적을 없애려고 장좌리(長佐里)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828년(신라 흥덕왕 3)에 중국과 일본의 무역로를 확보하고 해적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장보고는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끄는 청해진대사로 임명되었다. 청해진은 서남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적을 소탕하며 일본과 중국 사이에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는 이후 신라 왕위 계승에 휘말려 귀족 김양(金陽)의 사주를 받은 염장(閻長)에 의해 841년 암살당한다. 장보고가 죽자 청해진도 851년(문성왕 13)에 폐지되어 1만여 군사와 주민들은 벽골군(전북 김제)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장좌리에 다시 마을이 형성된 것은 임진왜란 후 인동 장씨(仁同 張氏), 진주 소씨(晉州 蘇氏), 창원 황씨(昌原 黃氏)가 [입주](/topic/입주)하면서이다. 장좌리 주민들은 장섬과 마을 사이 물길을 막아 물고기를 잡았다. 수심이 낮고 물발(조류)이 좋은 장섬 일대는 완도에서 가장 일찍 김 양식이 시작된 곳이다. 김 양식으로 인근 죽청리와 대야리 논을 가장 많이 부치기도 했다. 지주식 김발이 쇠퇴하면서 김 양식은 중단되고 일부 석화 양식, 미역 양식, [낙지잡이](/topic/낙지잡이)(주낙),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다. 특히 인근에 미역공장이 들어서면서 물때에 맞춰 갯일을 하던 [생업](/topic/생업) 대신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청해진이 설치된 장섬은 장좌리 주민들이 [고구마](/topic/고구마)를 캐고 [마늘](/topic/마늘)을 심던 밭이었다. 한 바퀴를 도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섬, 정상에 후박나무와 동백숲이 우거졌을 뿐이다. 장좌리제당은 장섬의 당집과 마을 안 당나무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장섬의 당집 주위에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다. 1984년에 [초가집](/topic/초가집)을 [기와집](/topic/기와집)으로 바꾸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청해진 관련 발굴조사와 복원이 이루어졌다. 2009년에는 장섬과 장좌리를 연결하는 목교가 완공되었다. 장섬에 있는 당집 중앙에는 장보고 대사의 그림이 걸려 있다. 왼쪽에 혜일 대사, 오른쪽에 정년 [장군](/topic/장군)을 각각 모셨다. 예전에는 송징 장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셨으나 1982년 남도문화제에 출전하면서 청해진과 관련이 있는 장보고대사를 추배했다. 이후 네 분을 모시다가 최근에는 장보고 장군, 혜일 대사, 정년 장군 세 분을 모시고 있다. 장좌리 마을당제의 주신격이 송징 장군이냐 장보고 장군이냐 하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지내고 있지만 임억령의 영웅서사시 를 보면 무당에 의해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역사 | 장좌리는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에 속한 [마을](/topic/마을)로, 읍소재지에서 북으로 약 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반농반어의 마을이다. 장좌리의 본래 이름은 장재리(張在里)였다고 한다. 장씨 성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장보고](/topic/장보고) 일가와 관련성을 빌미로 일제강점기 장보고의 흔적을 없애려고 장좌리(長佐里)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 828년(신라 흥덕왕 3)에 중국과 일본의 무역로를 확보하고 해적들의 활동을 막기 위해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장보고는 1만여 명의 군사를 이끄는 청해진대사로 임명되었다. 청해진은 서남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적을 소탕하며 일본과 중국 사이에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동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는 이후 신라 왕위 계승에 휘말려 귀족 김양(金陽)의 사주를 받은 염장(閻長)에 의해 841년 암살당한다. 장보고가 죽자 청해진도 851년(문성왕 13)에 폐지되어 1만여 군사와 주민들은 벽골군(전북 김제)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장좌리에 다시 마을이 형성된 것은 임진왜란 후 인동 장씨(仁同 張氏), 진주 소씨(晉州 蘇氏), 창원 황씨(昌原 黃氏)가 [입주](/topic/입주)하면서이다. 장좌리 주민들은 장섬과 마을 사이 물길을 막아 물고기를 잡았다. 수심이 낮고 물발(조류)이 좋은 장섬 일대는 완도에서 가장 일찍 김 양식이 시작된 곳이다. 김 양식으로 인근 죽청리와 대야리 논을 가장 많이 부치기도 했다. 지주식 김발이 쇠퇴하면서 김 양식은 중단되고 일부 석화 양식, 미역 양식, [낙지잡이](/topic/낙지잡이)(주낙), 바지락 양식을 하고 있다. 특히 인근에 미역공장이 들어서면서 물때에 맞춰 갯일을 하던 [생업](/topic/생업) 대신 새벽에 출근해 밤에 퇴근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 청해진이 설치된 장섬은 장좌리 주민들이 [고구마](/topic/고구마)를 캐고 [마늘](/topic/마늘)을 심던 밭이었다. 한 바퀴를 도는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은 섬, 정상에 후박나무와 동백숲이 우거졌을 뿐이다. 장좌리제당은 장섬의 당집과 마을 안 당나무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장섬의 당집 주위에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다. 1984년에 [초가집](/topic/초가집)을 [기와집](/topic/기와집)으로 바꾸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청해진 관련 발굴조사와 복원이 이루어졌다. 2009년에는 장섬과 장좌리를 연결하는 목교가 완공되었다. 장섬에 있는 당집 중앙에는 장보고 대사의 그림이 걸려 있다. 왼쪽에 혜일 대사, 오른쪽에 정년 [장군](/topic/장군)을 각각 모셨다. 예전에는 송징 장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셨으나 1982년 남도문화제에 출전하면서 청해진과 관련이 있는 장보고대사를 추배했다. 이후 네 분을 모시다가 최근에는 장보고 장군, 혜일 대사, 정년 장군 세 분을 모시고 있다. 장좌리 마을당제의 주신격이 송징 장군이냐 장보고 장군이냐 하는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지내고 있지만 임억령의 영웅서사시 를 보면 무당에 의해 진행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지역사례 | 광주․전남지방의 [마을](/topic/마을)굿은 일반적으로 당산제(당제)라고 부른다. 가장 일반적인 제일은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으로 열나흗날 밤에 시작하여 대보름날 새벽에 끝난다. 당산제를 모시기에 앞서 정월에 마을에서 궂은일이 생기면 당산제를 모시지 않고 연기한다. 제장은 제단과 제당으로 구분한다. 제단은 수목이나 바위가 많고, 제당은 완도․신안 등 도서해안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한때 새마을사업으로 많은 제당이 사라졌지만 근래에 다시 제당을 짓는 마을도 생겨나고 있다. 신격으로는 나무나 바위 등 자연신, [임경업 [장군](/topic/장군)](/topic/임경업장군)․[사도세자](/topic/사도세자)․[최영 장군](/topic/최영장군) 등 역사적인 인물신, 서해와 남해 도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말 등 [동물](/topic/동물)신이 있다. 당산의 구성은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등으로 나뉜다. 마지막까지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격으로 모셔지는 것에는 할머니당신이 많다. 완도 지역의 대표적인 당산제로는 약산면 당목마을당산제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정월 초엿새 10시 무렵에 마을숲 당집에서 몽돌을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낸다. 이날은 개를 막고 주민이 모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하루를 즐긴다. 개는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자 칠게와 도요새와 낙지의 생존공간이다. 제를 마친 주민들은 당할머니에게 올린 제주를 한 잔씩 주고받으며, 당집 앞에 차려 놓은 음식을 이웃마을 청년들에게 권한다. 이웃마을 청년들도 당할머니에게 봉투를 내놓는다. 그 사이에 여자들은 당집 안의 음식을 당산나무 아래로 옮겨 놓는다. 당산나무는 예부터 액을 막고 소원을 빈,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목이었다. 막걸리병을 든 할머니가 당산나무에 소원을 빈다. “어쨌거나 우리 마을 사람들 잘되게 해 주시고, 이 길로 다니는 자동차 사고 없이 해 주시고, 객지로 나간 자식들 모두 잘되게 해 주십시오.” 350여 년 전 당목리에 권씨, 박씨, 신씨 세 성씨가 들어와 살았다. 마을길과 농사지을 땅을 만들다가 돌 하나가 나와 [괭이](/topic/괭이)로 내려치자 피가 흘렀다. 다른 쪽에서도 둥근 돌이 나왔는데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부터 그 돌을 마을숲으로 옮겨 제각을 짓고 당할머니와 당할아버지로 모시고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지역사례 | 광주․전남지방의 [마을](/topic/마을)굿은 일반적으로 당산제(당제)라고 부른다. 가장 일반적인 제일은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으로 열나흗날 밤에 시작하여 대보름날 새벽에 끝난다. 당산제를 모시기에 앞서 정월에 마을에서 궂은일이 생기면 당산제를 모시지 않고 연기한다. 제장은 제단과 제당으로 구분한다. 제단은 수목이나 바위가 많고, 제당은 완도․신안 등 도서해안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한때 새마을사업으로 많은 제당이 사라졌지만 근래에 다시 제당을 짓는 마을도 생겨나고 있다. 신격으로는 나무나 바위 등 자연신, [임경업 [장군](/topic/장군)](/topic/임경업장군)․[사도세자](/topic/사도세자)․[최영 장군](/topic/최영장군) 등 역사적인 인물신, 서해와 남해 도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말 등 [동물](/topic/동물)신이 있다. 당산의 구성은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등으로 나뉜다. 마지막까지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격으로 모셔지는 것에는 할머니당신이 많다. 완도 지역의 대표적인 당산제로는 약산면 당목마을당산제가 있다. 마을 주민들은 정월 초엿새 10시 무렵에 마을숲 당집에서 몽돌을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낸다. 이날은 개를 막고 주민이 모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하루를 즐긴다. 개는 주민들의 생활터전이자 칠게와 도요새와 낙지의 생존공간이다. 제를 마친 주민들은 당할머니에게 올린 제주를 한 잔씩 주고받으며, 당집 앞에 차려 놓은 음식을 이웃마을 청년들에게 권한다. 이웃마을 청년들도 당할머니에게 봉투를 내놓는다. 그 사이에 여자들은 당집 안의 음식을 당산나무 아래로 옮겨 놓는다. 당산나무는 예부터 액을 막고 소원을 빈,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신목이었다. 막걸리병을 든 할머니가 당산나무에 소원을 빈다. “어쨌거나 우리 마을 사람들 잘되게 해 주시고, 이 길로 다니는 자동차 사고 없이 해 주시고, 객지로 나간 자식들 모두 잘되게 해 주십시오.” 350여 년 전 당목리에 권씨, 박씨, 신씨 세 성씨가 들어와 살았다. 마을길과 농사지을 땅을 만들다가 돌 하나가 나와 [괭이](/topic/괭이)로 내려치자 피가 흘렀다. 다른 쪽에서도 둥근 돌이 나왔는데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부터 그 돌을 마을숲으로 옮겨 제각을 짓고 당할머니와 당할아버지로 모시고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
조선일보사 | 잘돼도 못돼도 다 조상탓 | 이규태 | 2001 | 일지사 | 조선조 무속 국행의례 연구 | 최종성 | 20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