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에 전해오는 [마을](/topic/마을)굿으로, ‘아기씨’를 주신으로 모시는 굿. 이 굿은 2005년 1월 10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굿당은 ‘진퍼리 살군당’, ‘왕십리 애기씨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1동 산 125[번지](/topic/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1년에 ‘성동구 향토유적 1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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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이명숙 |
정의 |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에 전해오는 [마을](/topic/마을)굿으로, ‘아기씨’를 주신으로 모시는 굿. 이 굿은 2005년 1월 10일에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굿당은 ‘진퍼리 살군당’, ‘왕십리 애기씨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1동 산 125[번지](/topic/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1년에 ‘성동구 향토유적 1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음력 10월 초하루에서 초사흘 사이의 가장 좋은 날을 골라 굿을 하며, 굿 준비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된다. 일주일 전부터는 [제물](/topic/제물)을 준비한다. 제수를 살 때는 가장 좋은 것을 고르고, 물건 값은 깎지 않는다. 굿하기 3일 전에 간단한 [부정상](/topic/부정상)을 차려 놓고 문밖을 향해 앉아 징을 치며 상문풀이를 하여 전안과 당 주변에 모든 부정한 것을 사하는 의식을 행한다. 상문풀이가 끝나면 당 앞에 [금줄](/topic/금줄)을 매 삿된 귀신과 부정한 사람을 가린다. 당굿 당일 새벽에 당에 제물을 차리고 주당물림을 해 주변을 맑게 한다. 주당물림이 끝나면 비로소 당의 [대문](/topic/대문)을 열고 굿을 시작한다. 굿거리는 부정, [가망](/topic/가망)청배, 진적, 지역 유지들이 주관하는 유교식 제례, 본향거리, 아기씨거양거리, [말명](/topic/말명)거리, 제석거리, 부군거리, 별상거리, 신장, 대감거리, 성주, 창부, 계면거리, 뒷전 등으로 진행된다. 특히 아기씨거양거리에서는 당신인 아기씨로 분한 당주무가 [경대](/topic/경대)를 꺼내 [연지](/topic/연지)곤지를 찍는 등 화장을 한다. 화장을 마치고 양손에 [수팔련](/topic/수팔련) 꽃을 든 아기씨는 호구보를 쓰고 당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살핀다. 호구보를 벗고 주민들에게 공수를 주는 아기씨의 화장이 예쁘게 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마을](/topic/마을)의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 참고문헌 | [왕십리 아기씨당](/topic/왕십리아기씨당) 서울 지오귀굿·안당굿 음반 해설서 (이자균, 지구레코드, 2001) 서울지역 당신화 연구-행당동 아기씨당을 중심으로 (고영희, 서울굿의 이해, 민속원, 2007) | 역사 | 아기씨당에서 모셔지는 신격, 당의 건립 시기나 역사는 기록된 바가 없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당신화에 나타나는 구비역사와 당주였던 이들의 진술에 근거해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 당주인 [김옥렴](/topic/김옥렴) 무녀가 진술하는 당신화는 다음과 같다. 북쪽에 있는 나라가 망하여 공주 5명이 시녀들과 함께 남쪽으로 피란을 오게 된다. 왕십리에 이르러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산속에 머물며 몇 해 동안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한다. 그러다가 봄에 찔레꽃을 먹다가 찔레꽃을 입에 물고 세상을 떠난다. 이후 왕십리에 [마을](/topic/마을)이 생기자 마을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 한을 풀어 줄 것을 당부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당을 짓고 가을에 제를 지내게 되었다. 5명의 공주들을 살군당과 양지당에 한 분씩, 수풀당에 세 분을 모셨다. 이 신화는 고귀한 신분의 여성이 죽어 마을신으로 좌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모셔진 아기씨는 결혼 전에 마마로 인해 사망한 왕족 여성일 것으로 추정되며, 4월 15일에 아기씨 탄신제를 지내는 것으로 미루어 찔레꽃이 피는 시기인 4월 15일에 제의적 대상인 신격으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아기씨와 함께 나누어 모셨다는 양지당은 당 자체가 유실되었고, 수풀당은 당만 남아 있으며, 제의는 사라진 형편이다. 당 건물은 1947년에 촬영된 사진 자료에서 이미 250년 정도 된 건물로 추정하고 있으므로 건립연대는 이보다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당주였던 고송자의 “이 당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었으며, 난이 있을 때면 주민들이 무신도를 [반닫이](/topic/반닫이)에 숨겼다가 난이 끝나고 다시 꺼내 모셨다”는 진술로 미루어 보더라도 당이 300년 이전에도 존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은 본래 왕십리역에 있었으나 이후 4번에 걸쳐 터를 옮긴 끝에 1944년 오늘날의 행당1동 산 125[번지](/topic/번지)에 자리를 잡았다. 근래에 헐릴 위험에 처하기도 했으나 당주무와 주민들의 의지로 보존되었다. 당 내부는 신을 모시는 제당과 당주가 거주하는 생활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는 아기씨당만의 독특한 점으로, 간단한 음식 장만을 위한 공간만이 존재하는 다른 당들과 차이가 있다. 당 안에는 아기씨, 삼불제석, 조왕, 부군 내외, 산신, 좌(제)신장, 우(제)신장 등 일곱 위 7장의 화분이 모셔져 있다. 당주는 이 화분들이 100년 이상 된 것으로 진술하고 있다. 아기씨 제당 위에는 [경대](/topic/경대)와 분첩 등이 놓여 있다. 당굿의 아기씨거양거리에서 당주무가 직접 화장을 하고 [연지](/topic/연지)곤지를 찍는 데 소용된다. 김옥렴은 아양방-대사집-고송자-김묘분을 이어 마흔살 초반에 당주가 되었다. 특히 시할머니 고송자와 친정어머니 김묘분의 뒤를 이어 3대째 가족으로 대를 잇고 있어 당주로서 정통성이 높고, 당주 자신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재는 김옥렴의 딸 오소연이 전승자로서 학습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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