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제주시 건입동에서 벌어진 속칭 ‘칠머리당굿’으로, 해마다 2월 14일에 하는 영등 송신제. 이 굿은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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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3Cnt | 65 |
wkorname | 김헌선 |
정의 | 제주시 건입동에서 벌어진 속칭 ‘칠머리당굿’으로, 해마다 2월 14일에 하는 영등 송신제. 이 굿은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 참조 | [영등굿](/topic/영등굿) | 참고문헌 | 남국의 전설 (진성기, 일지사, 1968)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현용준, 집문당, 2002) 바람의 축제 칠머리당 영등굿 (문무병, 칠머리당굿 보존회, 황금알, 2005) | 내용 | 영등굿은 세시절기에 의한 풍어기원적 성격에 가까운 의례이다. 이 점에서 이 굿은 제주도의 중요한 당굿 가운데 하나이다. 제주도에서는 2월을 영등달이라고 하는데, 2월 영등달에는 영등할아버지가 들어와서 여러 곳을 거쳐 다시 2월 보름날에 나가다고 여긴다. 칠머리당은 영등이 나가는 과정에서 송별제를 하는 당이고, 이 당의 영등굿은 규모나 [단골](/topic/단골)들의 참여 규모가 매우 큰 영등굿 가운데 하나이다. 영등을 보내는 굿이므로 이를 ‘송별제’라고 지칭하도 한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칠머리당굿’이라고 했으나 현재 그 성격과 의미를 회복하여 ‘칠머리당영등굿’이라고 고쳐서 말하게 되었다. 이 칠머리당은 본디 건입동에 있었으나, 산지항이 들어서고 어수선해져서 사라봉 쪽으로 옮겨졌다. 칠머리당에는 영등굿에서 신들을 모시며, 이 신위를 보면 칠머리당에서 섬기는 신격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다. 서편에서 동편으로 모셔지며, 순서는 영등대왕ㆍ해신선왕ㆍ당신(도원수감찰지방관)ㆍ요왕부인ㆍ남당하르방ㆍ남당할망 등이다. 영등굿은 주신인 토박이신과 떠돌이신의 만남 및 이별이 주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영등신과 당신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마을](/topic/마을)단골인 제주도 해녀들이 힘을 모아 바다의 해산물이 잘되고 풍요한 삶을 기원하기 위해 벌이는 마을굿이다. 앞에서 언급한 신격관계에서 이 신들의 [위패](/topic/위패)가 증거이다. 제주도의 당제에서는 세시력에 따라 크게 4[가지](/topic/가지)가 있다. 그것이 곧 신년과세굿(정월), [영등제](/topic/영등제)(2월), [마불림제](/topic/마불림제)(7월), 시만곡대제(9월 또는 10월) 등의 마을굿이다. 오늘날까지 가장 활발한 전승의 실제를 보이는 굿은 신년과세굿과 더불어 2월 초부터 중순까지 전 지역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이다. 영등신은 풍어와 풍요를 기원하는 신격이다. 영등은 2월 초하룻날 한림의 수원당으로 들어와 보름에 성산 소섬을 거쳐 연평으로 빠져 나간다고 여긴다. 그래서 수원당에서는 영등신 환영굿을 크게 해 왔다고 전해진다. 현재 많이 남아 있는 굿은 13일부터 보름 사이에 행해지는 송별굿이다. 한편 신 관념에서 영등은 육지에서 비와 바람과 관련된 신격인 동시에 풍농과 관련되는 신격이다. 우리나라 중부와 남부지방에서는 흔히 영등할머니 신앙이 보인다. 이 신은 2월 초하루에 내려와서 20일 경에 올라간다고 여겨진다. 영등할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에는 비를 맞아 초라하게 보이도록 하려고 비를 몰고 오기 때문에 풍년이 들고, 딸을 데리고 오는 해에는 다홍[치마](/topic/치마) 노랑[저고리](/topic/저고리)의 고름과 치맛자락이 나부껴서 예쁘게 보이게 하려고 바람이 불기 때문에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도에서는 시체화생의 관념에 의해 풍어와 풍농을 기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문헌자료와 구전자료에서 동시에 볼 수 있다. 이를 소개하면서 이 신의 성격을 알아보자. 又二月朔日 於歸德金寧等地 立木竿十二迎神祭之 居涯月者 得槎形如馬頭者 飾以彩帛 作躍馬戱以娛神 至望日乃罷 謂之燃燈 是月禁乘船. ― 『東國與地勝覽』 卷之二十八 濟州牧風俗條 煙燈節 諺傳 大唐商人 漂沒於州境者 四体分解 頭骨入於魚登浦 手足入於高內涯月明月等浦 故每年正月晦時 百風有風自西海來則 謂之迎燈神降矣 沿邊居民聚群巫作野祀 夜以繼晝 造槎形如馬頭者 飾以彩帛 作躍馬戱 以娛神 至二月旬望 又造舟形具帆檣 汎于浦口 謂之送神 是時風自東北來則謂之燃燈去矣 自二月初吉于望後絶不放船 又俚語以爲燃燈神每於正月晦日入牛道 採食海族 翌日登陸地于十六日 復自牛島出去而所過沿邊蚌蛤螺蠣之屬 盡爲空殼乃燈神所採食者云. 心齋 金錫翼, 『海上逸史』 燃燈節條 첫 번째 기록은 『[동국여지승람](/topic/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있는 것이다. 2월 [삭일](/topic/삭일)(10일)에 귀덕·김녕 등지에서는 나무 대를 12개 세워 신을 맞이하여 제사를 지낸다.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 등걸 형상이 말머리와 같은 것을 얻어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躍馬戱)를 지어서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15일)에 이르러 파하는데 이를 연등이라 하며, 이 또한 연등달에는 배를 타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기록은 당나라 상인이 제주 근경에서 표류해 빠져죽었다고 하는 데서 시작한다. 시신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 두골은 어등포로 들어오고, 수족은 고내포·애월포·명월포 등지로 들어왔다. 이 때문에 매년 정월이 되면 모든 바람이 서쪽 바다에서 불어 오며, 이를 일컬어 영등신이 하강했다고 하여 이곳에 사는 백성들이 [무리](/topic/무리)지어 무당과 함께 들에다 굿판을 벌인다. 밤낮으로 말머리 같은 나무 등걸에 비단으로 꾸며 약마희를 지어서 신을 즐겁게 하고, 2월 15일에 이르면 돛대를 갖춘 배 형태를 만들어 포구에 띄우면서 이를 신을 보낸다고 일컫는다. 이 달에는 배를 띄우지 않는다. 문헌기록은 오늘날의 구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다. 예컨대 약마희와 같은 것은 오늘날에 전하지 않는 것으로 이것의 기원은 알기 어렵다. 배방선을 바다에 띄우기에 앞서서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두 번째 기록의 항간에 전하는 이야기인 당나라 상인의 시신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어등포·고내포·애월포·명월포 등지로 들어왔고 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구전되는 이야기나 본풀이 영등대왕 시신이 나뉘어서 들어왔다는 말과 일치한다. 따라서 4세기 전의 문헌에 전하는 사실과 구전의 사실이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사실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영등제에 대한 오늘날의 전승을 살펴보는 일이 더욱 긴요하다. 영등신과 관련된 신화는 구전신화와 본풀이를 합해 네 가지가 전승된다. 영등신과 관련된 자료는 다음과 같다. 1. 진성기, 영등대왕, ≪남국의 전설≫, 일지사, 1968, 60~62쪽.진성기, 영등당본풀이,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topic/사전)』, 민속원, 1990. 2. 진성기, 영등할망, 『남국의 전설』, 일지사, 1968, 62~63쪽. 3. 진성기, 영등당본풀이, 『제주도 무가본풀이 사전』, 민속원, 1990. 4. 현차남 [구연](/topic/구연), 영등할으방, 2000년 2월 16일에 필자 채록. 5. 이씨무녀 구연, 영등할으방, 「제주도의 영등굿」, 『한국민속학』 창간호, 1970. 1은 제주시 한림읍 한림리에 전승되는 영등당의 당본풀이이다. 한림읍 옹포리의 남무(男巫)인 김승은에 의해 구전되는 것으로, 진성기 선생이 채록한 것을 다시 표준어로 바꾸어서 소개한 것이 『남국의 전설』에 수록되었다. 자료의 원문은 『제주무가집』에 처음 수록되었다가 1968년에 『남국의 무가』에 실리고, 다시금 1990년에 『제주도 무가 본풀이사전』에 실렸다. 2는 한림읍 동명리에 전승되는 일종의 구전신화로, 당본풀이는 아니다. 변신생이라고 하는 화자가 전승한 것으로, 1958년에 채록되었다. 3은 영등당본풀이로, 애월읍 신엄리 남무인 양태옥이 전승하는 자료이다. 이것은 영등당이 따로 있어서 전승되는 자료이므로 1과 함께 영등당의 본풀이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4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의 심방인 현차남 할머니가 전승하는 자료로, 2000년 2월 16일에 채록됐다. 그러나 이 자료는 심방이 구연했으므로 당본풀이일 것 같으나 사실은 당본풀이가 아니다. 오히려 구전신화이기는 해도 예사로이 전승되는 신화로 보아야 옳다. 그렇다면 1, 2, 3, 4 네 가지 전승 자료는 영등신의 내력을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당본풀이로 심방에 의해 전승되는가 아니면 예사 구전으로 전하는 신화인가에 차이가 있다. 이 네 가지 전승은 그 자체로 소중하기 때문에 편마다 검토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핵심적인 내용이 1에 있으므로 이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황영등이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데 용왕국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한 어선이 폭풍을 만나서 외눈배기 나라로 표류해 갔다. 이것을 본 영등은 어부들을 살리기 위해 왕석 위에 나가 앉아 있었다. 영등은 배와 어부들을 왕석 안에 숨겨놓았다. 외눈배기가 개를 데리고 찾으러 왔다. 외눈배기가 영등에게 어부들의 존재를 묻자 자신도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말했다. 외눈배기가 가자 영등은 배와 어부들을 내놓고 어부들에게 관음보살을 읊으면서 가라고 말했다. 한참을 빠져나온 어부들이 안심하고 관음보살 읊기를 그치자 외눈배기가 있는 곳으로 다시 끌려오게 된다. 영등은 다시 관음보살을 읊으면서 가라고 신신당부하면서 2월 초하루에는 자신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어부들이 한수리로 돌아온다. 영등은 외눈배기에 의해 세 토막이 나서 머리는 소섬에 오르고, 사지는 한수리에 오르고, 몸체는 성산에 올랐다. 도민들은 어부들의 수중액을 면하게 해준 영등의 고혼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소섬에서는 정월 그믐날에 제를 지내고, 2월 초하루에는 비꿀물에 오르고, 2월 5일에는 성산면에서 영등제를 지낸다. 영등은 이 과정에서 제를 받는 조상이되고, 소섬·성산·한수리에 있어서 삼첩이 된다. 이 신화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표류 어부들, 황영등, 외눈배기 괴물의 관계이다. 어부들이 표류를 하다가 도착한 이상한 섬에서 구원해준 인물이 곧 황영등이고, 이와 달리 [적대자](/topic/적대자) 노릇을 하는 인물이 곧 외눈배기 괴물이다. 어부들이 관음보살의 주문을 읊지 않아서 다시 외눈배기 땅으로 돌아오자 여기에서 영등의 희생이 이루어졌다. 괴물에 의해 토막이 난 영등의 시신이 각기 제주도의 특정한 고장으로 갈라져서 버려졌고, 이 시신의 화생(化生)을 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형적인 시체화생의 조상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시신으부터 생명의 구근이나 씨앗을 얻는 것은 세계적인 신화의 구조 속에서 동일하게 확인된다. 영등달의 [생업](/topic/생업)적 준비와 이 신화는 서로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등의 희생과 괴물은 이 신화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영등굿은 이 신화를 바탕으로 굿을 하는데 신화의 본풀이는 상당 부분 사라졌으며, 실제로 굿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의례적인 활성화를 위한 맞이와 놀이로 대폭 강화되었다. 칠머리당영등굿의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초감제-본향매어듦-요왕맞이-씨드림-[영감놀이](/topic/영감놀이)-배방선 초감제는 굿을 하는 서두 대목이다. 세부적인 절차가 더 있지만 개략적으로 굿을 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시한 뒤 이 굿을 하는 연유를 아뢰고, 굿을 하는 여러 사람의 이름[열명]을 올리고서 청한다. 본향매어듦은 영등신과 당신을 청해 모셔들인다. 이때 신격을 위해 이들의 청좌는 매우 중요하다. 요왕맞이는 요왕신을 모셔오는 절차가 중요하며, 이 신격의 초청에 의해 굿을 하는 분명한 목표가 제시된다. ‘질침’이라고 하는 맞이의 중요한 절차를 통해 신을 맞이하는 의례를 거행하고, 영등신와 요왕신을 보내는 절차를 연행한다. 그러나 이 사이에 곧 영감놀이라고 하는 영감본풀이의 주체를 가시화한 놀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영감놀이와 영등신앙의 결합이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신화적 기원과 의례적 연행이 엄격하게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등굿의 기본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점에서 칠머리당영등굿은 긴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영등굿은 일단 제주도의 세시력에 의한 상세한 생명체계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영등굿 기간에는 어떠한 물질도 하지 않고 바다에 생명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휴업기이다. 이것이 에코시스템의 설정으로 진정한 가치를 영등굿이 지향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둘째. 신화적 관점에서 이 영등굿은 인간의 희생에 의한 시체화생으로부터 바다의 생명체가 시작된다는 매우 흥미로운 설정을 담고 있다. 영등대왕의 죽음이 이를 말해주는 것으로, 이 과정의 시체화생으로 풍농이나 인간의 식량에 기원을 두었다고 하는 근본적인 시체화생신화와 맥락이 같다. 더구나 괴물이 바로 외눈배기라고 했으므로 이 존재들에 대한 기원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즉 신화의 상상과 특징을 적절하게 구현하는 것이 영등굿의 의례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셋째, 영등굿의 지역적 분포와 전국적 사례의 비교 역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영등달에 영등굿을 하는 현상은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특정 지역에서는 이 굿이 있기도 하지만 또한 없기도 하다. 이 분포와 [변이](/topic/변이)가 어떠한 의의가 있는지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영등굿의 대상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통해 이 굿의 진정한 의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의 특수성이 이로써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아울러 영등굿은 제주도에서만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제주도가 아닌 다른 고장에서도 ‘영등할매’신앙이 발달해 있으면서 특히 남해안에서는 제주도에 못지않은 의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구체적으로 영등신을 위하는 의례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개인적 차원의 신앙이 아니라 집단적 차원의 신앙이라는 점에서 단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생명체계의 신화와 의례가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제주도의 영등굿은 총괄적인 각도에서 접근해야 그 성격이 부각된다. 제주도의 영등굿은 과학을 넘어서는 메타과학이고, 주술과 과학이 신화생명체계로 얽혀 있는 의례라는 점에서 소중한 의의가 있다. 모든 생명이 발휘되는 시기에 신앙적 간기를 두어서 생명을 보호하고,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면모를 보여주는 의례이다. 이 점에서 이 영등제는 세계문화유산적 가치가 있고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의 의례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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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출판사 | 충청도 무가 | 김영진 | 1976 | 집문당 | 한국무속연구 | 김태곤 | 1981 | 열화당 | 굿춤의 지역적 양상 | 김정녀 | 1985 | 열화당 | 재체험을 통한 죽음에의 이해 | 황루시 | 1985 | 민속원 | 제주도무가 본풀이 사전 | 진성기 | 1991 | 홍성문화원 | 홍성의 무속과 점복 | 최운식 외 | 1997 | 박이정 | 동해안 지역 무극연구 | 이균옥 | 1997 | 박이정 | 동해안별신굿 | 이균옥 | 1998 | 제주도 무속신화 | 문무병 | 1998 | 문화재관리국 | 은산별신제 종합 실측조사보고서 | 하효길 외 |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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